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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11-08-31 15:00:00
조회수48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해야만 하는 이유
박성종(서울시대안교육센터 교육연구팀장)
세상에는 사람이 만들었으나 사람이 만든 그것이 다시 사람을 만드는 몇 가지가 있다. 유대인은 탈무드를 만들고 탈무드는 유대인을 만든다. 건물은 사람이 만들지만 건물환경이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덧붙여 보자면, ‘사람이 여행을 기획하지만 그 여행이 다시 사람을 만든다.’ 의도하지 않았던 여행에 몸을 맡겼던 순간 어느새 그 여행이 나를 찾게 하고 세상을 돌아보게 하는 열정적 배움을 이끌어 낸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이병률의 산문집 「끌림」을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장점은 단 몇 일만에 쏟아 내는 ‘이야기들’ 생산에 있다. 여행을 통해 나만의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너와 나의 멜로디가 만들어지며 우리 안에서는 세상과의 만남을 통해 성냥불을 팍 긋는 히스토리가 생겨난다. 그래서 여행은 곧 그 자체로 삶이면서 배움이 되는 것이다.
대안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잃어버린 감수성을 회복하기 위해 일과 놀이와 학습을 효과있게 통합하는 방안으로 체험학습과 여행학습을 교육과정의 큰 부분으로 채택해 왔다. 서울시대안교육센터는 2002년부터 ‘여행프로젝트’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2003), 나의 영웅을 찾아 떠나는 여행(2004) 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진행해 왔다. 또한 동북아 평화 베이스캠프(2007), 대안학교 해외이동 학습에 대한 기초 연구(2007), 대안학교 도보여행의 특성과 효과에 관한 연구(2008), 징검다리 학습과정 10대 여행백서(2009, 2010) 등 다양한 여행학습을 실시하면서 그 효과성을 검증해 왔다. 특히 대안학교의 여행학습은 57%이상이 산행을 포함한 2박3일 이상의 도보여행으로 진행되는데 그 높은 강도의 경험을 통해서 성취감과 자신감, 공동체적 결속, 배려와 소통 등의 교육적 가치들을 배우게 된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러한 배움의 가치들 때문에 대안교육과 여행학습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다.
근대교육이 시작된 1900년대 초부터 각급학교 또한 수학여행(修學旅行)을 시행해 왔고 광복 후 부터는 일반화되어 지금에 이르러는 초․중․고등 교육기관에서도 수학여행을 필수적인 교육과정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요즘 수학여행은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거나,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돌아 올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된 듯하다. 여행의 과정에서 얻게 되는 감흥이나 교육적 효과보다는 이미 교과서에서 사진으로 만난 실물들을 나의 사진기에 담아 재확인하고 돌아오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거나 여행에서 수반되는 친구들과의 새콤달콤한 추억만을 안고 돌아와야 할 때가 있다. 또한 안전사고의 잠재된 위험으로 인해 수학여행 자체를 포기하기도 하고 가능한 안전한 행로로 일정을 제한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관광적 측면의 ‘여행(旅行)’은 있으나 ‘수학(修學)’은 그 흔적이 희미해진 의례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반성하기도 한다.
대안학교의 여행학습도 이 안전사고의 위험에서 안전하지만은 않다. 지난 2007년 8월 부산우다다학교(‘우리는 다 다르다’)는 여행수업의 일환인 ‘보따리수업’을 떠난 교사 1명과 학생 3명이 낙동강 하류 무인도인 ‘진우도’에서 생태탐사 중에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그때 그 여행은 네 명의 벗을 잃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사고가 있고 난 후 서울시대안교육센터, 대안교육연대, 부산대안교육협의회 등을 중심으로 전국 대안학교 교사들이 모여 추모사업과 추모제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고, 400명의 대안학교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이 추모제에 참가하였다. 대안학교 교사들은 고인들이 평소 즐겨 부르던 노래와 남겨진 이들을 위한 다짐의 공연을, 제주 문화학교 들살이는 고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곡을 만들고 노래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찾아 떠났다가 아직 남들은 가보지 못한 길을 먼저 가게 되었지만 그들은 부산우다다학교 관계자들 뿐 만아니라 대안교육 현장의 많은 사람들에게 ‘너, 우리에게로 살아’라는 추모제의 이름처럼 매년 우리의 가슴길을 여행하며 기억되고 있다.
여행이란 본시 이러하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나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은 대안교육 여행학습의 필수준비물이다. 어떠한 어려움이 생길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길의 여정을 즐겨하겠다는 열정적 배움의 선택은 일상적 현실이 주는 것만큼 안전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우리는 해봐서 안다. 여행길에 나서야만 배우고 알게 되며, 현재에 감사하는 거룩한 겸손이 여행길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에게 심겨진다는 것을 안다. 크리스토퍼 콜롬버스, 리빙스톤, 마젤란 등 세계지도를 바꾼 유명한 탐험가들은 차치해두더라도 내가 그려왔던 세계지도가 단 일주일 만의 여행으로 수정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다음 여행이면 나의 지도가 또 다시 수정될 것을 알기에 열린 마음으로 그 다음 여행을 기다리며 준비한다. 여행을 떠날 때는 반드시 지도가 필요하지만 여행을 떠나서는 지금의 지도를 반드시 수정해야만 한다.
독서가 마음의 양식이라면 여행은 영혼의 양식이이다. 여행은 삶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배움에 관한 도전이자 나를 깨뜨리는 희망고문이다. 이것이 바로 서울시대안교육센터와 네트워크학교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여름마다 여행프로젝트를 지속해왔던 이유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나의문화유산답사기 1권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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